“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고집만 세지고 툭하면 삐치는 걸까?”
한국 사회에서 종종 들려오는 탄식입니다. 시니어 세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지내다 보면, 작은 일에도 고집을 부리고 금세 삐쳐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집과 삐침의 복합적인 감정은 개인 내면에 갈등을 일으키고, 가족과 이웃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적잖은 불화를 가져옵니다. 결국 소통이 단절되고 정서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악순환이 빚어지곤 합니다. 이 글에서는 한국 시니어 문화 속에서 나타나는 고집과 삐침의 감정적 복합성이 어떻게 갈등을 낳고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지 분석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소통 부재와 대화의 단절
시니어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소통 부재는 이미 사회적인 문제로 지적될 만큼 심각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젊은 세대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노인이 절반을 넘고, 젊은 사람 10명 중 9명은 노인과의 소통이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언어와 문화의 격차로 인해 서로 대화를 시도해도 공감대를 찾지 못하고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대화의 단절이 반복되면 점차 대화 자체를 시도하려는 노력도 줄어들고, 오해의 골은 깊어져 갑니다.
대화가 단절되는 데에는 시니어 개인의 태도도 영향을 미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수가 줄고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령의 부모님들이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무뚝뚝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아예 입을 닫아버리기도 하지요. 이는 성격이 갑작스레 변했다기보다 목소리나 청각의 노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목은 쉽게 쉬고 귀는 잘 안 들리니 대화 자체가 피곤해지고, 자연스럽게 말수가 적어지는 것입니다. 또 주변에 대화 상대가 점점 줄어들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감을 잃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니어 분들은 차라리 말을 아끼게 되고, 젊은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며 서로 간 언어의 다리가 끊어져 버립니다.
문제는 이렇게 소통이 부족해질수록 오해가 커지고 관계의 거리감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마음이 상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노인이 혼자 삐쳐서 말을 않으면 자녀나 주변인은 그 이유를 몰라 답답해하고, 반대로 젊은이가 침묵하면 노인은 본인에게 무관심하거나 불순종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서로 속마음은 전혀 모른 채 상대를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단정 지어 버리고 맙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 좁혀지지 않는 간극
소통의 부재 뒤에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니어 세대는 과거 권위적인 분위기와 엄격한 규범 속에서 살아왔고, 젊은 세대는 훨씬 자유롭고 평등한 문화를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이로 인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반된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시니어들은 *“내가 살아보니 이게 다 경험에서 우러난 옳은 방식”*이라며 자신의 가치관을 굽히지 않는 고집을 보이곤 합니다. 반면 젊은 세대는 그것이 시대에 맞지 않는 고루한 생각이라고 여기며 답답함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손주 교육 방식에 대해 옛날식 훈육을 고집하면 자녀 세대는 *“우리 시대에 맞지 않아요”*라며 반발하게 되고, 여기서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세대 간 간극은 개인적인 관계에서도 두드러집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심리적으로 보수적이 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방식이나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익숙한 과거의 방식만을 반복하려 하죠. 어르신 입장에서는 익숙한 것이 가장 안전하고 옳다고 믿게 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변화에 대한 *“필연적인 저항”*으로 보이곤 합니다. 한편, 젊은 사람들은 노년 세대의 이러한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완고하다”**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시니어들의 고집에는 불안과 자기방어 심리가 깔려있기도 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뒤처지거나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실패를 겪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 속내와 달리 그냥 고집불통으로 보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방을 판단하게 됩니다. 노인은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어. 내 말을 안 들으니 답답하다.”라고 여기고, 젊은이는 “어른들은 왜 이렇게 자기만 옳다고 해? 말이 안 통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은 이렇게 상대방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낙인찍게 만들고, 그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이해가 부족하니 대화는 더 단절되고, 단절되니 더욱 이해할 기회가 없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죠.
미숙한 감정 표현과 이기심
갈등을 키우는 또 다른 원인은 감정 표현의 미숙함과 이기심입니다. 한국의 현재 노년층이 청장년이던 시절에는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기보다 참거나 돌려 표현하는 문화가 강했습니다. 속으로 서운해도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화가 나도 직접 원인을 이야기하기보다는 투덜거리거나 삐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강해져서, 자신의 감정을 성숙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유치한 방식으로 표출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운한 일이 생겼을 때 *“사실 이러이러해서 내가 섭섭했다”*고 말하면 좋겠지만, 대신 말없이 며칠 동안 냉랭하게 군다든지, 상대방을 피하는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곤 합니다. 주변 사람 입장에서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어르신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로 헤아려야 하니 답답하고 난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런 미숙한 감정 표현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잦습니다. 가족 간에는 예의를 갖추기보다는 편안한 만큼 감정적인 대응을 하기 쉬운데, 시니어 세대는 자신의 서운함을 일종의 *“삐짐”*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아버지는 섭섭한 일이 있어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불편한 기색으로 침묵해버립니다. 어머니는 서운하면 한숨을 푹 쉬고 말을 줄이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반응들은 정작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명확히 전달하지 못합니다. 결국 자녀들은 부모님의 속마음을 추측해야 하고, 틀리게 추측하면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습니다.
이기심도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소입니다. 오랜 세월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노년 세대는 이제 자신이 중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지곤 합니다. *“이젠 나를 좀 챙겨줘도 될 때”*라는 생각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것이 지나쳐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요구하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예컨대, 어떤 할아버지는 손자들 생활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방식과 일정만을 고집합니다. 가족들이 맞춰주지 않으면 금세 기분이 상해 버리곤 하지요. 젊은 세대 눈에는 이런 모습이 이해심 부족에 자기밖에 모르는 행동처럼 비쳐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구시지?” 하는 불만이 쌓입니다. 하지만 시니어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만큼 외롭고 관심이 고프기 때문이라는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습니다. 단지 표현이 미숙하다 보니 투정처럼,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표출될 뿐이지요.
문제는 이런 미성숙한 감정 표현과 자기중심적 태도가 반복될수록 주변 사람들의 피로감이 누적된다는 점입니다. 처음 한두 번은 “연로하시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하려던 가족들도, 계속된 고집과 삐침 앞에서는 지쳐갑니다. 시니어 분들은 본인은 분명 서운해서 그러는 것인데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더욱 서운해하고,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어떻게 해줘야 만족하실까” 어려워하며 마음의 거리가 생깁니다. 서로를 위한 마음은 있는데, 정작 표현 방식과 시각 차이 때문에 모두가 상처받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현실 속 갈등 사례: 가족에서 이웃까지
이런 감정적 갈등은 현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족 간 갈등은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고 아픈 사례입니다. 예를 들어, 성인이 된 자녀와 노년의 부모 사이에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딸이 직장 생활과 육아로 바쁘다 보니 예전처럼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이 쌓여 있었지만 직접 표현하진 않고 며칠째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딸은 그제서야 뭔가 섭섭하신 일이 있음을 눈치채고 급히 찾아갔지만, 이미 어머니는 마음이 토라질 대로 토라져 있었습니다. “아무 일 없으니 신경 쓰지 마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딸은 또다시 답답함을 느낄 뿐입니다. 결국 둘 다 상처받은 채 어색한 침묵만 흐르고, 속마음은 끝내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소한 오해가 쌓이고 풀리지 않으면, 나중에는 대화 자체를 피하게 되어 정서적 거리가 생겨버릴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고집과 삐침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해로해 온 노부부라 해도, 사소한 생활 습관이나 건강 관리 문제를 두고 의견 충돌이 일어납니다. 남편은 본인의 방식을 고집하고 아내의 잔소리에 귀를 닫아버립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알아서 하라”*며 토라지고는 식사를 챙겨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또 화가 나서 며칠 동안 냉전을 벌이기도 하지요. 서로 사실은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인데, 대화의 방식이 잘못되어 작은 문제가 큰 감정 싸움으로 번집니다. 이 경우에도 끝까지 진심 어린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부 간에도 깊은 정서적 골이 생기고 맙니다.
친구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로당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사이에 자리다툼 같은 사소한 일이 생겼다고 해봅시다. 한쪽은 본인은 전부터 앉던 자리가 있어 거기에 앉았을 뿐인데, 다른 한쪽은 *“내 자리를 뺏었다”*고 삐쳐서 말도 섞지 않습니다. 서운함을 느낀 분은 며칠째 모임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두 분이 싸웠다는 것만 알고 난처해합니다. 결국 오래된 친구 사이였지만 작은 오해가 풀리지 않아 서로 등을 돌리고 맙니다. 이렇듯 시니어들 사이에서도 감정 표현이 서툴면 오랜 정까지 한순간에 금이 갈 수 있습니다.
이웃 간에도 왕왕 발생합니다. 옆집 어르신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던 한 노인은 상대방이 사과하러 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끝까지 버티고 싶었던 것이지요. 결국 두 집은 얼굴을 보지 않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이전에 정답게 대화 나누던 때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우, 당사자는 **“내가 옳고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에 갇혀 있어 좀처럼 마음을 풀지 못합니다. 그 사이에 쌓였던 좋은 기억들과 관계의 끈은 서서히 끊어져 가는 것입니다.
감정적 고립의 결과: 외로움과 관계 회복의 어려움
이러한 갈등의 누적된 결과는 시니어 세대의 정서적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고집과 삐침으로 인해 하나둘 주변 사람이 등을 돌리고 떠나가면, 남는 것은 외로움뿐입니다. 가족과도 소원해지고 친구들도 떨어져 나가면, 시니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고독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옳은데 왜 다들 나를 이해 못해!” 하고 분노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차가워진 주변 분위기에 상처받는 쪽은 본인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관계가 소원해진 뒤에는 먼저 다가가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자존심과 서운함 때문에 사과 한 마디, 연락 한 통 쉽게 못하게 되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갑니다.
정서적 고립이 깊어지면 우울감과 무기력이 뒤따라오기 쉽습니다. 가까운 가족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혼자 화내고 삐쳐봐야 결국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 됩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함께 웃고 대화 나눌 사람이 없으면 마음의 활력을 잃게 됩니다. 노년기의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있다는 통계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노인의 고집”*으로 관계의 괴리가 커지면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진행되기도 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고집은 결국 고립을 부르고, 고립된 노인은 더더욱 소통이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지요.
한번 멀어진 인간관계의 회복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오랜 세월 자기 방식대로 살아온 시니어들에게는 더 큰 도전입니다. 예전에 다퉜던 일을 허심탄회하게 풀고 싶어도 대화 채널이 이미 닫혀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자녀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볼까 해도 ‘지금 연락하면 어색해하지 않을까,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다시 마음을 닫고 포기해버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집을 꺾고 먼저 손 내미는 용기와 겸손이 필요한데, 그 문턱을 넘기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간의 감정의 골은 커져만 갑니다. 한쪽에서는 *“그때 그렇게 해버려서 아직도 섭섭하다”*는 감정을 품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워낙 완강하셔서 다가가기도 힘들다”*며 포기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서로 만나지 않으니 오해를 풀 기회는 더욱 없고, 그렇게 관계 회복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듭니다. 결국 노년의 고집과 삐침은 본인과 주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채 각자 고립된 섬처럼 지내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맺음말: 이해와 소통을 향한 노력
고집과 삐침이 만들어내는 감정적 갈등의 메커니즘은 이처럼 복합적입니다. 노년의 완고함에는 오랜 삶의 경험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고, 삐치는 모습 뒤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서툰 감정 표현 방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이면을 서로가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시니어 세대는 자신의 감정 표현 방식이 때로는 상대에게 닿지 않을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고, 젊은 세대는 어르신들의 고집 뒤에 숨은 상처와 불안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신체적·정신적 변화로 완고해지고 예민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가족과 사회가 받아들이는 동시에, 시니어 분들도 스스로 소통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지 않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늙어서 아집에 빠지진 않았는가? 주변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고, 또 주변에서는 “어르신의 저 행동 이면에 어떤 외로움이 있을까?” 생각하며 한걸음 다가선다면, 완강하게 굳어졌던 관계도 다시 부드럽게 풀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머지않아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의 행복과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이들의 정서적 고립 문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고집과 삐침으로 상징되는 감정의 벽을 허무는 일은 당사자와 가족 모두의 몫일 것입니다. 때로는 먼저 손을 내밀고 말을 거는 용기,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노년의 완고함을 “그런 모습 뒤에도 사랑과 외로움이 함께 있음을” 이해해준다면, 그리고 시니어들께서도 “서툴지만 진심을 전하려” 노력한다면, 세대와 세대를 잇는 따뜻한 소통의 다리가 놓일 것입니다. 고집과 삐침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가족 간, 이웃 간에 웃음꽃이 피는 행복한 노년 문화를 기대해봅니다.
참고 자료
- 배리어프리 시니어라이프 – 「노인의 고집, 시니어의 변화를 도울 수 있는 방법」 (2024년 9월 2일) 【4】
- 브런치스토리 (심리탐험가 김홍채) – 「나이 든 부모와의 관계」 (2022년 6월 20일) 【8】
- 브런치스토리 (김성수) – 「노인의 고집」 (2019년 9월 9일) 【17】
- 매일신문 (이주형 기자) – 「[노인을 이해하는 방법] <중> 정신적 노화… 노인의 고집」 (2020년 1월 6일) 【24】